청첩장은 보내지 말라

청첩장은 보내지 말라


……내 생각은 이렇다. 사람은 항상 앞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 현재의 시간을 몇 줌 떼어 과거의 새대가리 같은 판단들 위로 뿌리는 탑골공원식 행동은 그만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날짜가 지난 달력은 마치 가슴처럼 찢어버렸고, 세 달 중에 한 달은 음력을 사용했다. 따라서 그녀가 나를 떠난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 알지 못한다. 굳이 그걸 세어보려면 손가락을 사용해야 한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그 짓을 감행한다.

100일째가 넘어가자 내 손마디는 마치 손가락만으로 채찍을 맞으며 십자가를 등에 이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예수의 고난을 묘사하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녀가 나를 떠난 지는 853일이 지났다.

내가 알기로, 그녀에게는 지금 남자친구가 있다. 그들의 관계는 한미동맹처럼 굳건해 보이고 머지않아 결혼이라는 협상의 행복한 테이블에 앉게 될 것 같다. 아마도 그 테이블은 코끼리의 상아를 깎아 만들었으며, 의자는 엉덩이에 땀이 차지 않도록 특수 제작되었겠지.

만에 하나 그들이 헤어진다고 해도, 더 이상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행복한 부인이 되길 바란다.

다만 나에게 청첩장은 보내지 말라. 그건 두 눈이 멀어버린 할머니와 삼시세끼를 라면으로만 때워 영양실조에 걸린 소년이 함께 사는 단칸방에 속도위반 통지서를 보내는 일처럼 사악하고 황당한 일이다.

만약 나에게 청첩장을 보낸다면 나는 즉시 그 행복한 종이를 불행한 이면지로 만들어서 뒷장에 내 유언을 적은 다음, 집에서 나와 안나 카레니나처럼 철로에 뛰어들 것이다.

형사는 내 방을 둘러보던 중 내 책상 위,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놓인 유서와 그 뒷면의 결혼식장 주소를 보고 너를 찾아가겠지. 그러고는 놀란 데다 흰 드레스까지 입어서 토끼처럼 보이는 너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행복한 날에 죄송합니다만, 더러운 소식이 있습니다. 혹시 이런 분을 아십니까?”

그러면 네 남편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고, 형사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건 마치 평화로운 참참참 게임처럼 보이고, 벌칙을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도의적인 차원에서 청첩장은 보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