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집 장롱에는 시계가 있다. G-SHOOK이라고 적힌 짝퉁이다.
2.
나는 그 시계를 군대에서 썼다. 제대하면서 그 시계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처음에 시계는 내 손목에 있다가, 바닥에서 발견되더니, 나중에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 할아버지의 손목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육사에 가길 바라셨다.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셨다. 그러나 나는 사병으로 복무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제가 군대에서 썼던 시계에요, 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시계를 왜 버려두냐, 하셨다. 나는, 이제 아무 의미도 없는 걸요, 했다. 할아버지는, 그럼 내가 써도 되겠니? 하셨다. 나는 그러시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좋아하셨다. 나는 그게 짝퉁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외출하실 때면 그 시계를 차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내게, 시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하셨다. 나는 시계가 고장 난 모양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오후만 되면 시계에서 알람이 울려 삶 속으로 파고든다고 하셨다. 확인해보니 14시 16분에 알람이 맞춰져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ADJ. 버튼을 누르면 알람이 꺼진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어려운 일이라고 하셨다. 나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후로도 할아버지는 한동안 그 시계를 차셨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는 빈 손목으로 다니셨다. 나는 그 시계가 할아버지께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시계는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고, 찾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때 나는 평생 다시 볼 일 없는 어떤 여자와 한방에 누워 있었다. 휴대폰은 배터리가 없었다. 전원을 켜자 수십 통의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숙취처럼 쏟아졌다. 나는 변기를 붙잡고 몇 차례 구토를 한 후, 장례식장으로 뛰어가야 했다.
그날 밤, 할아버지는 친구들과 노래방을 나오다가 계단에서 바닥으로 떨어지셨다고 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응급실에서 간신히 임종을 지켰다고 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다름이었다. 나는 울 자격도 없었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후,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모였다. 아버지는 불콰해진 얼굴로 말씀하셨다.
"이제 다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시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3.
할아버지의 유품이 모두 정리되었지만 누구도 할아버지가 그런 시계를 사용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계는 장롱에 있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이거 네 거냐? 물으셨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버렸다.
가족들은 삶으로 돌아갔다. 오후가 되면 아버지는 일 없는 날이면 거실에서 TV를 보시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시거나 책을 읽으시며, 할머니는 라디오를 들으신다. TV소리, 물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라디오 소리……. 그리고 14시 16분이 되면, 희미한 소리가 정확히 20번을 삐삐 거린 후, 멎는다. 가족들은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분명하게 듣는다. 장롱 속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내가 지키지 못한 할아버지의 임종을 고발하며 알람을 울린다.
여기 짝퉁이 있다. 여기 짝퉁이 있다.